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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 인간의 ‘언어문화’ 영향 끼친단 과학적 근거 나와 과학·언어계 ‘갑론을박’
2019-04-19 17:05:08
손승빈
▲언어학자들은 인간이 모두 언어를 구사하는 똑같은 생물학적 도구와 소리 생성 능력을 공유한다고 생각한다(사진=ⓒ123RF)

[리서치페이퍼=손승빈 기자] “당신이 먹은 음식이 곧 당신이다”라는 말이 있다. 먹는 것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만큼 음식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가 말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의 언어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연구팀은 “생체역학과 언어학적 증거를 이용해 수천 년 전 농경문화가 시작되면서 [f]와 [v]와 같은 순치음 사용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농업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이전보다 부드러운 음식을 먹게 됐고, 이러한 식생활 변화에 따라 치아 마모와 턱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f]와 [v]와 같은 소리를 내기가 쉬워졌다는 것이다.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 연구는 인간 생물학에서 문화적 변화가 전 세계 언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연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치아 마모

논문의 제1 저자인 다미안 블라시 연구원과 그의 동료들은 치아 마모에서 나타난 변화가 [f]와 [v]와 같은 소리의 발음을 향상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치아 마모에 관한 전문가들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다만 블라시 연구팀은 “치아 마모에서 나타난 변화가 언어의 변화를 전적으로 뒷받침하거나 다른 요인들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이번 연구가 언어의 일부 측면은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방식과 똑같이 다루어져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언어가 생물학과 문화 사이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촉발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턱 구조의 변화

그렇다면 인간이 이전에는 잘 하지 않던 순치음 발음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답을 찾으려면 생물학적 인류학을 살펴봐야 한다.

모든 영장류의 턱 구조는 원래 위턱의 앞니가 아래턱의 앞니보다 튀어나온 ‘피개교합’ 또는 위턱의 앞니가 아래턱의 앞니보다 조금 앞에서 맞물리는 ‘가위교합’ 형태였다. 

농사짓는 문화가 정착하기 이전에 인간은 주로 질기고 딱딱한 음식을 섭취했다. 그래서 인간의 치열은 어렸을 때는 피개교합 상태지만 나이가 들수록 치아가 점차 마모돼 성인이 됐을 무렵에는 위턱의 앞니가 아래턱의 앞니를 덮지 못하고 서로 맞물리는 ‘절단교합’ 상태가 됐다. 

연구팀은 이 상태에서는 아랫입술과 윗니 사이에서 나는 순치음을 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농경문화가 확산하면서 곡식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식량을 발효시키는 등 식품 가공 기술이 함께 발전하게 됐다. 

이에 따라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치아 마모도 그만큼 줄어들어 어렸을 적의 피개교합 또는 가위교합 상태를 성인이 돼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오늘날의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가위교합형 턱 구조를 가진 4300년 전의 성인 두개골이 이를 입증한다. 

성인이 돼도 위아래 앞니가 딱 맞물린 절단교합 상태가 되지 않고 피개교합이나 가위교합 상태를 유지한 덕에 순치음을 발음하기가 쉬워졌다. 

아마도 처음 발화된 순치음은 그저 우연히 튀어나온 소리였을 것이다. [f]와 [v] 소리가 전 세계 곳곳에서 출연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발음하기 쉬워지면서 순치음은 점점 더 많이 쓰이게 됐다. 

▲질긴 음식을 주로 먹던 식생활은 턱의 구조를 피개교합에서 절단교합으로 발달시켰다(사진=ⓒ123RF)

생물학과 언어

취리히대학 연구팀의 주장은 모두 가정에 근거한 것이지만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의 생물음향학 전문가인 테쿰세 피치 교수는 “연구팀이 그럴듯한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피치 교수는 이 연구에 대해 “언어 변화에 대한 생물학적 제약이 문화적 변화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아마도 가장 설득력 있는 연구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취리히대학의 고인류학자 마르시아 폰세 드 레온과 크리스토프 졸리코퍼는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쳐 치아 마모가 인간의 언어 다양성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연구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가 언어의 차이에 대한 자기 민족 중심주의적 견해를 강화할 수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언어학자들도 상당히 많다. 

언어학자들은 언어와 방언의 다양성에 근거해 우리 모두가 언어를 발화하기 위한 똑같은 생물학적 도구와 소리 생성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기존 이론에 대한 도전

과거에는 언어가 고정된 기술이라고 믿었다. 생성된 이래로 변함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언어학과 인류학은 오늘날의 언어는 언어 구조의 유형과 분포가 과거와 같다고 가정해왔다. 

그런데 취리히대학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이러한 가정을 뒤엎고, 인간이 발음할 수 있는 소리의 범위가 언어가 처음 생겼을 때와 달라졌다고 본다. 

연구팀은 [f]와 [v]와 같은 순치음이 지금으로부터 4,000~1만 년 전쯤 농경문화가 정착한 이후에야 발음되기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줬다. 

오늘날 순치음은 전 세계 언어의 절반 정도에서 나타난다. 게다가 인도-유럽어족 언어들은 청동기 시대 이후로 많이 바뀌었다. 

연구팀은 앞으로 관련 연구를 계속하면 고대의 문어체가 실제로 어떻게 발음됐는지를 재구성해 고대 언어의 역사에 관한 목록을 작성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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