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R "세계 지도자 10명 중 1명, 유력 정치 가문 출신"

2019-04-09 09:20:48 조선우 기자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사진=ⓒ123RF)

라틴어로 권력, 통치, 지배 등을 뜻하는 ‘다이너스티(dynasty)’는 일종의 정치 시스템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왕조’나 '가문'이 가장 적합하다. 중국의 경우 BC 2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정치 가문의 역사는 매우 깊다.

'정치 가문'이라고 하면 봉건주의 시대의 전유물이라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가 대세인 지금도 정치 가문은 전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세습이 아닌 투표로 결정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국제적 학술 전문지 ‘히스토리컬 소셜 리서치(Historical Social Research, HS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지도자 10명 중 1명이 유력 정치 가문 출신이었다.

HSR은 2000년부터 2017년까지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전·현직 정치 지도자 1,029명의 가족 배경을 조사한 결과, 그 중 12%가 정치 가문에 속했다.

HSR이 언급한 정치 가문이란 배우자를 비롯한 가족 구성원이 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의원, 법관, 관료, 대통령 등이 모두 포함된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아르헨티나 대통령,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을 예로 꼽을 수 있다.

정치적 가문에 속한 사람은 정계 진출 시 가문 내에 정치적 연줄이 전혀 없는 사람에 비해 이점이 많다. 정치 참여의 기회를 쉽게 얻고 인지도, 인맥, 재정 등에서 유리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HSR이 조사한 지도자 1,029명 중에서 여성은 66명에 불과했다. 지우마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 겸 노벨평화상 수상자,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

▲조지 워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사진=ⓒ123RF)

그런데 여성 지도자 66명 중에서 정치 가문을 배경으로 가진 이는 19명이었다. 963명 중에서 100명인 남성 지도자에 비해 비율이 3배가량 높다. 그 만큼 남성 중심의 정치계에서 여성의 '사다리 오르기'가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수치로 풀이된다. 

정치 가문은 여러 국가에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며 정치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정치 가문에 속한 후보자는 쉽게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후광 효과를 빌어 무능력한 지도자가 선출되는 폐해를 낳기도 한다. 

국가 지도자는 한 나라의 명운을 책임지는 자리다. 따라서 국민들의 생계, 교육, 건강 등을 돌볼 능력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물론 정치 가문에 속했다고 모두 무능력하다는 뜻은 아니다. 故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 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경우 가족을 등에 업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선출되어 뜻을 펼친 유능한 지도자들이었다. 

문제는 능력 있는 지도자보다 무능력한 지도자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이다. 특히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는 국가보다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지도자들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이 지도자들은 가문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자식이나 친척을 동원해 권력을 이어간다. 그 배를 불리기 위해 착취하는 대상은 대부분 배고픈 이들이다. 정치 가문에 현혹되어 인물의 됨됨이를 쉽게 판단하는 유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서치페이퍼=조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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