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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생각과 세계관을 결정한다?
등록일 : 2017-10-02 00:00 | 최종 승인 : 2017-10-02 00:00
김선미

[리서치페이퍼=김선미 기자] 제2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3인칭 시점으로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언어학에서 다루는 개념을 주시하며 언어의 적절한 습득이 심리적 성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 왔다. 현재로서는 언어가 지적 능력을 형성하는 데 있어 그저 필수적인 요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능 자체를 형성한다는 것이 거의 정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각을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없으면 깊은 사고가 불가능하고, 어떤 개념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사고의 깊이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세상 만물을 이해하려 시도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 목소리가 쓸 수 있는 어휘가 부족하다든지 하는 이유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세상 만물 또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내 지적 성과는 대부분 언어 습득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처음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모든 개념에는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의자를 예로 들어 보자. 방 안에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의자는 기표다. 반면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의자라는 개념은 기의다. 기표로서의 의자와 기의로서의 의자가 합쳐져 기호(sign)가 형성된다. 라캉은 이런 식으로 의미가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실존과 개념이 합쳐지면 의미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사피어와 언어학자인 벤자민 리 워프는 사피어-워프 가설에서 언어 구조가 사람의 세계관, 즉 실존적 인식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사피어-워프 가설을 전적으로 추종하는 학자들은 언어가 전적으로 생각을 결정하며 특정 언어의 어휘들로 묘사할 수 있는 대상에 따라 사고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결정론은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한편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3인칭으로 생각하면 시점이 변화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머릿속에서 대명사를 '나'에서 '그'나 '그녀'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실존적 자아로부터 해방시켜 나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짊어져야 할 부담을 없애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나' 또는 본인의 이름을 사용해 자전적 기억을 얘기하도록 하고, 다른 팀은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며 얘기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1인칭으로 이야기한 참가자들의 스트레스가 3인칭으로 이야기한 참가자들보다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

연구팀은 언어가 거의 즉각적으로 사람의 정서적 경험을 형성하기 때문에 시점을 바꿔 얘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고통과 괴로움을 직접 받아들이는 1인칭 시점으로 얘기하면 더욱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특히 과거 기억에 대해 얘기할 때는 감정이 더욱 강렬해진다. 대부분의 기억에는 온갖 감정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부정적 경험을 떠올릴 때 자신에게 극도로 집중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제3자의 시점으로 본인의 경험을 떠올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더욱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필링 굿>의 저자이자 인지행동 정신의학자인 데이비스 D. 번스는 본인의 환자들에게 이른바 '이중잣대 역할극'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번스는 이렇게 조언했다. "친구에게 조언해줄 때는 연민이 더욱 강해지면서도 더 객관적인 사람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조언할 때도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는가?"

한편 스페인 심리학자 알베르트 코스타의 연구팀은 2개 언어가 통용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이중 언어 사용이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 가량이 이중 언어 사용자로 일상 생활에서 제2언어를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 싱가포르나 스위스 같은 곳에서는 2개 언어가 그저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코스타 연구팀이 증명하려 하는 것은 언어결정론이 아니다. 코스타 연구팀은 언어가 생각을 직접 결정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제2언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이 더욱 형편없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 언어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했으나 한 가지 방식으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형성하는 필수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 능력에 따라 수학 능력이나 공감 능력도 달라질 수 있다. 여러 연구가 증명하듯, 언어는 분명 사고방식, 지적 능력, 감정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리서치페이퍼=김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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