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 현대인들이 많이 기르는 대표적인 반려 동물이다. 연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개는 약 1만5,000년 전부터 인간 곁에 머문 것으로 추정된다. 고양이는 개보다 훨씬 늦은 1만 년 전부터 2,000년 전 사이에 가축화된 것으로 보인다. 예수가 이 땅에 오기 훨씬 전부터 개와 고양이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전자 변이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주인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물론 양자는 서로 무관치 않다. 고양이는 주인을 못 알아본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사람을 인식하는 능력'은 개와 고양이, 원숭이, 말 등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능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기르는 애완동물이 갖춘 특별한 능력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7일(현지시간) 영국 학술지 '왕립오픈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다소 의외인 동물도 인간을 식별할 수 있다. 바로 양이다.

영국 캠브리지대는 8마리의 암컷 양을 훈련시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영국 아나운서 피오나 브루스, 영화배우 엠마 왓슨과 제이크 질렌할 등 4명의 유명인사 얼굴을 구별할 수 있게 만들었다. 7년 전 우연히 양을 얻게 되면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는 신경생물학자 제니 몰톤은 "양은 정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몰톤에 따르면 양의 뇌가 해부학적으로 인간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양의 똑똑함에서 착안해 시작된 이 연구는 3단계의 훈련 코스로 진행됐다. 1단계는 양에게 2가지 옵션을 주고 선택하게 하는 훈련이었다. 연구진은 화면에 유명인사의 정면 사진과 까만 사진을 띄우고 양이 15초간 접근할 수 있게 두었다. 적외선으로 관찰하다가 양이 유명인사 사진을 선택하면 간식을 제공했다. 2단계는 유명인사 사진과 미식축구 헬멧, 가스등 등 62개의 사물 사진을 구별하는 훈련이었다. 예컨대 엠마 왓슨과 가스등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훈련이다.

3단계는 유명인사 사진과 사람 사진 중에서 고르는 훈련이었다. 사람 사진은 양이 본 적 없는 사람의 사진으로 선정됐다. 실험 결과 평균적으로 양은 약 80%의 확률로 유명인사 사진을 골랐다. 속칭 찍기 확률이 50%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이에 대해 브래드 더체인 영국 다트머스대학 뇌과학 교수는 "추측건대 양의 인간 언굴 인지 능력은 다른 양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의 부산물"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정면 사진이 아닌 측면 사진을 활용한 후속 실험에서는 확률이 65%로 떨어졌다. 그래도 여전히 찍기 확률보다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0년 한 연구에 의하면, 정면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정답률이 90%였지만, 측면 사진일 때는 76%로 14%포인트가 낮았다.

물론 양의 얼굴 인식 능력에 대한 연구가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지난 2001년 조나단 퍼스 영국 노팅엄대학 교수 연구진도 양에게 얼굴을 인식시키는 실험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실험이 보다 정교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보다 더 나아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체인 박사의 말처럼 양이 동료 양을 구별하는 뇌 시스템으로 사람을 알아본 것이라면, 귀여운 양이 개, 고양이와 더불어 인간 곁에 늘 머무르는 반려동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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