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살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던 애월의 해변. 살면서 본 경치 중 가장 아름다웠던 경치였다. 그 바다를 보는 순간, '아름답다', 이 생각 하나만 했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어떻게 느끼는 것일까? 보는 순간 '찌릿' 하고 감전되듯 느끼는 것일까?

지난 5월 '현대생물학(Current Biology)'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듯싶다.

미 뉴욕대 앤 브리엘만 박사는 62명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이미지를 볼 때 △캔디를 먹을 때 △부드러운 곰인형을 만질 때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의 정도를 조사했다. 이미지는 아름다운 이미지, 그럭저럭 멋있는 이미지, 보통 이미지(가구 카탈로그의 의자 등)로 구성됐다. 피실험자들은 4개의 척도에 맞춰 각각의 대상을 평가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첫 번째 실험과 모든 조건을 동일하게 하되 '산만함'이라는 변수만 하나 더 추가했다. 참가자들은 미리 제시되는 알파벳을 기억하고 있다가 설문조사 도중에 이 알파벳이 방송되면 버튼을 누르라는 요청을 받았다. 즉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이 온전히 이미지나 캔디, 곰인형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연구결과, 아름답지 않은 대상(보통 이미지)을 경험할 때는 산만함이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아름다운 이미지를 볼 때는 산만함이 영향을 끼쳤다. 즉, 산만한 상황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가 낮게 나온 것이다. '아름다움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는 임마누엘 칸트의 말은 옳았던 것이다.

한편 '감각적인 즐거움은 아름다울 수 없다'는 칸트의 주장은 위 연구에 의하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달콤한 캔디를 먹거나 보드라운 곰인형을 만질 때 아름다움 점수를 후하게 준 참가자가 30%나 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그 아름다움을 즐길 시간이 필요하고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취객이 애월의 해변을 휘젓고 다녔다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못 했을 것이다. 최소한 '찌릿'이 아름다움은 아닌 것이다.

◇ 아름다움의 기준 '유전 vs 환경'

한 집에서 나고 자란 연년생 자매인데도 옷이나 연예인 취향이 다른 것을 보면, 미적 기준도 미리 DNA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유전일까, 환경일까?

이를 밝히기 위해 지난 2015년 미국 보스턴 소재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연구진이 쌍둥이 연구를 실시했다.

연구진은 일란성 쌍둥이 547쌍과 이란성 쌍둥이 214쌍에게 각각 백여 명의 남성과 여성 사진을 제시한 후 점수를 매기라고 요청했다. 실험 참가자를 일란성과 이란성으로 구분한 것은 유전적 영향을 가늠하기 위함이다. 또 환경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같은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만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조사결과, 유전 정보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사이에서도 '아름다움(혹은 잘생김)'에 대한 평가가 달랐다. 즉 미의 기준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

◇ 상대적인 미 vs 절대적인 미

미팅에 나가거나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우리는 자신보다 예쁘거나 잘생긴 사람 옆을 경계한다. 어쨌든 나보다 나으니까 비교될 수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반면 모두의 기준을 만족시킬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적인 미와 절대적인 미,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런던대학 로얄할러웨이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여러 장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매력도를 하나씩 평가하게 했다. 순위를 매긴 연구진은 인기 없는 얼굴 사진을 다른 얼굴 사진 옆에 놓은 후 피실험자들에게 다시 매력 점수를 매기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똑같은 얼굴 사진인데도 첫 번째 조사에 비해 두 번째 조사에서 매력 점수가 높게 나왔다. 반대로 인기 있는 두 얼굴 사진 사이에 점수가 낮은 사진을 놓았을 때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됐다. 인기 없는 얼굴 사진은 더 냉정한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아니기를 바랐건만...이로써 이 연구는 본 기자가 지금까지 읽어 봤던 모든 연구 중 가장 가혹하고 가장 잔인한 연구로 우뚝 섰다. 원숭이 눈을 뽑는 생체실험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보다는 덜 잔인할 것이다.)

◇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귀한 마음

아름다움은 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자, 유전에 의해 미리 결정된 것이 아닌 후천적인 것이며, 주변 사물(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물론 두 연구 결과가 미학 연구의 전부는 아니므로, 이와 상반대는 연구 결과가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이 같은 과학적 분석보다는 그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인간의 마음이 더 귀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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