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을 피곤케 하는 스트레스는 각종 질병의 근원지처럼 보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안과 우울증이 생기고, 두통이나 근육통이 온다.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 체계까지 약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월 학술지 '사회적·인지적·감정적 뇌과학(Social, Cognitive and Affective Neuroscience)'에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스트레스는 감정이입과 친사회적 행동을 유도한다.

오스트리아 비엔나대학의 클라우스 램므 박사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을 고강도 스트레스에 노출시킨 후 fMRI로 뇌 활동을 촬영했다.

80명의 남성 실험 참가자들은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가하기 위해 시간 제한을 설정해 압박을 주고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전달했다. 연구진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성되는 부신피질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측정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파악했다.

이와 동시에 연구진은 고통스럽게 손 수술을 받고 있는 환자의 모습이 찍힌 사진을 피실험자에게 주고는 그 환자의 고통을 생생하게 상상해 보라고 요청했다. 연구진은 자동적인 혐오 반응과 환자의 고통에 대한 진심 어린 감정이입을 구별하기 위해, 몇몇 사진을 제시할 때는 손을 마취했다고 알려줬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구진은 피실험자가 환자의 관점에 얼마나 이입했는지, 자신의 감정을 얼마나 잘 조절했는지 측정했다.

그 후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독재자 게임'을 하게 했다. 독재자 게임은 실험 참가자가 자신과 모르는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 돈을 분배하는 게임으로, 친사회적 행동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실험 결과, 고통 받고 있는 환자 사진을 보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공감 관련 영역이 강하게 활성화됐다. 활성화된 공감 관련 영역은 앞뇌섬(anterior insula), 전방중심부대상피질(anterior midcingulate cortex), 일차체감각피질(primary somatosensory cortex)이었다.

그러나 연구진이 손을 마취했다고 알려줬을 때도 공감 영역이 똑같이 활성화됐다. 뒤집어 말하자면 환자의 관점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감정이입 영역 활성화는 독재자 게임에서의 돈 분배 액수와도 관련이 있었다. 뇌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강하게 반응할수록 피실험자는 모르는 사람에게 더 많은 돈을 나눠줬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 램므 박사는 "뉴런의 반응 차원에서 보자면, 스트레스를 받은 참가자들은 사진에 대해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사진 속 사람이 처한 실제 상황에 대한 복잡한 정보를 참가자가 무시했음도 암시한다"라고 말했다. 즉 스트레스를 받을 때 감정이입을 좀 더 잘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도울 가능성도 높아지지만, 타인의 관점을 적절히 유지하는 능력은 손상되는 것이다.

◇ 스트레스와 감정이입의 묘한 관계가 던지는 실마리

언뜻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커플, 스트레스와 감정이입.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공감 능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있자니, 혹시 공감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라는 진화 또는 지적설계자의 명령은 아닐까, 충격적인 상상을 제멋대로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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