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사상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가사가 있는 팝송이 은반 위에 울려 퍼졌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2014-2015 시즌부터 규정을 개정해 피겨스케이팅의 모든 종목에 가사가 있는 주제곡을 허용한 덕분이다. 귀에 익숙한 대중음악이 주제곡으로 활용 가능해짐에 따라 앞으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관람하러 가는 젊은 층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라트비아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디아나 니키티나(Diana Nikitina)가 샤데이의 "사랑의 전사"(Soldier of Love)를 주제곡으로 선택했고, 프랑스의 마에베레니스 메이테(Mae-Bernice Meite)는 비욘세의 "헤일로"(Halo)와 "런 더 월드"(Run the World)에 맞춰 연기했다.

가사가 포함된 주제곡 사용이 허용되면서 관중들은 더 이상 주제곡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추측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가사가 모든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경험적미학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Empirical Aesthetics)의 연구원이자 음악학자인 폴 엘버스는 가사가 있는 주제곡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가 명확하기 때문에 이를 보는 관중들의 뇌의 수고를 덜어준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출전한 헝가리의 이베트 토트(Ivett Toth)는 쇼트 프로그램 음악으로 록그룹 AC/DC의 "백인블랙"(Back in Black)에 맞춰 연기를 펼치면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 종종 사용되는 비제의 "카르멘"(Carmen)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Swan Lake) 등 가사가 없는 주제곡을 사용할 때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엘버스는 가사가 있는 주제곡 사용이 허용되면서 선수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피겨스케이팅은 빙판 위에서 고난도 기술을 구사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맞춰 감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스포츠이다. 심사위원들은 선수들의 점프, 스핀, 스텝 등을 평가한 기술점수에 안무를 해석하는 능력과 독창성 등을 포함한 구성점수를 합산해 점수를 매긴다. 따라서 피겨스케이팅에서 선수들의 연기와 어우러지는 주제곡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이다.

지난해 '심리학 프론티어'(Frontiers in Psychology)에 논문을 발표한 엘버스는 음악이 우리가 선택을 하는 방식을 위협이 되기보다는 잠재적으로 보상이 되는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엘버스의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스스로 또는 전문가가 선택한 가사가 있는 동기부여 음악을 들은 후에 공 던지기 경기를 했다. 대조군은 음악을 듣지 않고 경기에 임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음악 선택이 자존감 향상이나 성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신 연구팀은 자신이 선택한 가사가 있는 동기부여 음악을 들었을 때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증가하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피겨스케이팅 세계에 적용하면,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위험 감수는 미라이 나가수(Mirai Nagasu) 선수의 '트리플 악셀'(Triple Axel)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점프천재로 불리는 미국의 네이선 첸(Nathan Chen) 선수가 벤자민 클레멘타인의 "네메시스"(Nemesis)에 맟춰 시도한 다수의 '쿼드러플'(quadruple, 4회전)을 다른 선수들이 시도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엘버스는 가사가 포함된 음악을 주제곡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앞으로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퀸터플'(quintuple, 5회전)을 시도할 정도로 한층 과감해지길 기대한다.

ISU의 새로운 규정이 가져올 변화는 젊은 관중을 끌어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마이테를 비롯한 선수들 역시 새로운 규정 덕분에 피겨스케이팅이 훨씬 더 재미있어졌다고 생각한다. 이번 올림픽에서 마이테는 춤추기에 안성맞춤인 비욘세의 팝송을 자신의 피겨스케이팅 프로그램에 접목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이전에 가사가 있는 주제곡이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은 종종 "카르멘"과 "백조의 호수"와 같은 클래식 음악을 선택했다. 이러한 오페라 음악들은 줄거리가 분명하고 등장인물의 성격이 명확해서 선수들이 관중을 감성적 여정으로 이끌기가 좀 더 쉬웠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담 리폰(Adam Rippon) 선수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가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쇼트 프로그램을 위해 리폰은 관중들이 일어나서 박수칠 만큼 경쾌한 음악을 선택했다. 쇼트 프로그램 연기시간은 2분 50초에 불과해 큰 감동을 선사할 시간이 많지 않다고 리폰은 언급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리폰은 서정적인 스케이팅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그의 길고 멋진 에지는 마치 그가 스케이트장 주위를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캐나다의 에릭 레드포드(Eric Radford) 선수는 ISU의 결정이 앞으로 은반 위를 누비게 될 선수들을 위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레드포드는 가사가 포함된 주제곡을 허용한 것이 아마도 ISU가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이 사용한 팝송 중에는 벨기에의 로에나 핸드릭스(Loena Hendrickx)가 사용한 마돈나의 "프로즌"(Frozen), 헝가리의 이베트 토트가 사용한 AC/DC의 "선더스트럭"(Thunderstruck)과 "백인블랙"(Back in Black), 프랑스의 샤피 베세이에(Chafik Besseghier)가 선택한 슈거힐 갱의 "래퍼스 딜라이트"(Rapper's Delight) 등이 있다.

한국의 민유라와 알렉산더 겜린(Alexander Gamelin)은 아이스댄스 쇼트 댄스에서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데스파시토"(Despacito)를 선택했고, 프랑스의 바네사 제임스(Vanessa James)와 모건 시프레스(Morgan Cipres)는 에드 시런의 "메이크잇레인"(Make It Rain)에 맞춰 연기하는 등 은반 위의 선율이 한층 다채로워졌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김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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