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출처=게티 이미지 뱅크)

가볍고 튼튼해 우리 생활 전반에서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 하지만 잘 썩지 않는 특성 때문에 자연 분해가 어려워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꼽힌다. 현재 지구의 바다는 무려 5조2500억개 이상의 플라스틱 파편으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전 세계인들이 매년 쓰고 버리는 5,000억개 가량의 비닐봉지도 한 몫 한다. 대부분의 하천이 플라스틱으로 오염되면서 지구촌은 해양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최근 영국 포츠머스대학 연구팀이 플라스틱을 먹어 치우는 미생물의 구조를 연구하다가 플라스틱 페트병을 훨씬 더 잘 분해하는 변종 효소를 우연히 개발했다고 발표해 화제다. 과학자들이 플라스틱을 먹는 미생물에 힘입어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묘안을 내놓을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6년 일본의 과학자들은 쓰레기 재활용 시설 부근에서 플라스틱을 먹고 자라는 미생물을 발견했다.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Ideonella sakaiensis)로 명명된 이 미생물은 페테이스(PETase)라 불리는 효소를 분비해 서식지 주변의 페트병을 분해하고 대사에 활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과학자들은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의 특성을 모방하는 방법을 모색해왔으며, 최근 들어 기존에 알려진 효소보다 훨씬 더 플라스틱을 잘 분해하는 돌연변이 효소를 개발했다.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가 나날이 악화되는 가운데 이 변종 효소를 잘 활용한다면 환경오염을 줄이는 매우 실용적인 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ational Renewable Energy Laboratory, NREL) 소속 연구원들을 포함해 영국 포츠머스대의 존 맥기헌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가 '폴리에틸렌 테레프타레이트'(PET)을 분해하도록 돕는 효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이보다 월등한 PET 분해능력을 가지는 변종 효소를 만들어냈다.

PET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페트병의 재질로, 내구성이 뛰어나서 유리병을 대신해 탄산음료와 생수 등 음료 용기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생산 단가가 저렴하고 사용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류는 1940년대 초반부터 PET를 대량 생산 및 사용해왔다.

맥기헌 교수는 이번에 변종 효소가 개발됨에 따라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 뜻밖의 발견)은 종종 과학 연구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 이번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예상치 못한 발견은 플라스틱 분해 효소를 한층 향상시킬 여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폐기물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쓰레기 산이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이상적인 플라스틱 재활용 실현에 한발 다가서게 해준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페테이스가 플라스틱을 소화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다만 페트병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시간에 비해서는 훨씬 짧은 시간이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페트병이 분해되기까지 수 백 년이 걸리지만 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가 발견된 덕분에 그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효소는 단 며칠 만에 플라스틱 분해를 시작했다.

NREL 소속 구조생물학자인 브라이언 도노회 박사는 "불과 96시간 만에 효소가 PET를 분해하는 모습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 가능하다"고 설명하며, "이 실험은 바다와 쓰레기 매립지에서 찾은 실제 샘플을 이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찌그러진 플라스틱병(출처=게티 이미지 뱅크)

연구팀은 PET를 먹고 자라는 미생물에서 분리한 페테이스의 3차원 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강력한 X선을 이용했다. 그 결과 PET 분해를 가능케 하는 효소의 활성 부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맥기헌 교수는 "생물학적 촉매의 내부 작용을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더 빠르고 효율적인 효소를 만들어내기 위한 청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효소의 진화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페테이스의 활성 부위를 변이시켰다. 큐티나아제(cutinase)라는 다른 효소에 가까워 질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본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효소의 구조를 바꾸자 플라스틱 분해에 한층 최적화된 효소가 탄생한 것이다.

NREL의 재료과학자인 닉 로러 박사는 "놀랍게도 우리는 변종 효소가 PET를 분해하는 능력에 있어서 천연 효소를 능가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PET 분해 활성을 더욱 향상시킨 변종 효소를 개발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변종 효소는 PET 분해 효율이 천연 효소에 비해 최대 20% 향상될 수 있다. 이러한 진화가 미미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연구팀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내기 위해 효소의 분해 능력을 한층 향상시킬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새로운 구조의 변종 효소는 PET의 대체물인 '폴리에틸렌 퓨란디카르복실레이트'(PEF)도 분해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크나큰 환경오염 문제, 즉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에 대항하는 데 있어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변종 효소가 더욱 개선되어 우리가 바다에 버린 수 조 개의 플라스틱을 처리하려면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변종 효소 개발은 단기에 사라지지 않을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하는 데 있어 자연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NREL 생물공학자인 그레그 베컴 박사는 "우리는 페테이스가 PET 분해에 아직 완벽히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추후 단백질 공학 및 진화의 도구를 활용하여 효소의 분해 능력을 한층 향상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이찬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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