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발생이 인간과 인간이 사는 환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농업은 수천 년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시작됐다. 지역마다 농업 시작 시기가 다른 것인데, 왜 그런 것일까? 그럼에도 혹시 공통점은 없을까?

미국 워싱턴대학교와 콜로라도주립대학교 연구진은 농업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공통점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환경이 개선되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오래된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발견했다. 반면, 환경이 나빠지고 인구 밀도가 낮아지면서 식량 공급의 필요에 의해 농업이 나타났다는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사실상 찾지 못했다. 또한, 농업이 공통적인 패턴 없이 각 지역의 고유한 사회적·환경적 조건 때문에 생겼다는 이론에 대한 근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 과거는 어땠을까?

아주 오래된 인간의 역사를 연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기본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이 어렵게 발굴한 유물을 분석해 연구를 진행하기는 하지만, 큰 그림을 그릴 때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워싱턴대와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진은 사냥, 낚시, 기타 식량 확보 활동 등을 분석함으로써 비교적 최근에 생긴 사회의 환경, 문화적 특성, 인구 밀도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는 데 초점을 뒀다.

연구진은 인구 밀도를 정밀히 분석하고자, 환경 생산성, 환경 안정성, 사회 구성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평균적인 거리, 토지나 기타 자원을 소유할 수 있는지 여부, 가장 가까운 바다와의 거리 같은 요인들을 활용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연구진은 과거의 인구 밀도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을 만들었다.

◇ 연구진의 인구 지도 모형 활용해 보니

연구진이 만든 인구 지도는 약 2만1,000년 전의 인구 밀도까지 추정해 볼 수 있는 모형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이 지도를 활용해 농업이 발생한 12곳의 조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농업이 등장한 모든 지역은 위치는 다르지만 환경 개선과 인구 밀도 증가가 동시에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 개선과 인구 밀도 증가가 농업을 탄생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연구진은 환경 개선이 당시 사람들에게 창의성을 안겨줬다고 분석했다. 환경 개선으로 인해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게 됐고, 한 장소에 정착해 살게 되면서 그 아이디어들이 서로에게 공유되거나 널리 퍼져 더 놀라운 혁신, 즉 농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풍요로운 환경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지역마다 조건이 동일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농업이 발생한 모든 지역은 사회적으로 다 다를 수밖에 없으며, 농업 발달 시기도 제각기 다르다. 재배한 작물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농업 발생 지역마다 조건과 시기가 다 다르지만 환경이 개선되고 인구 밀도가 증가했다는 것만큼은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연구에 참여한 패트릭 캐배낫은 "모든 주요 농업 발생 지역은 그럴 수밖에 없을 만한 아주 중요한 환경 변화가 있었다"라면서 "12곳 모두 환경 조건이 나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이밍이 제각기 다르고 농업이 발생한 지리적 위치가 다 다르기는 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진은 인구 지도 모형을 다른 영역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지난 4일(현지시간)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게재됐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김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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