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의 형성 조건

음모론이 활개를 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깊은 무력감, 팽배한 불안감, 신뢰도 낮은 메시지 플랫폼, 정치적 양극화 등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美 NBC 호스트 메긴 켈리는 인터넷 쇼 '인포워즈' 진행자이자 유명한 음모론자인 알렉스 존스를 인터뷰한 내용을 방영했다. 이에 나라 전체가 예민한 상황에서 알렉스 존스의 음모론을 굳이 홍보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음모론자나 이 같은 거짓의 진실을 밝히겠다고 미디어에 내보내는 사람 모두가 음모론 전파에 기여할 뿐이다.

美 베이츠칼리지 스테파니 켈리-로마노 교수는 "메긴 켈리가 알렉스 존스를 인터뷰 해봤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이라며 "뻔히 간지러울 것을 알면서도 옻나무를 집어 들어 얼굴에 가져다 문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

켈리-로마노 교수는 왜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져드는지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음모론은 언급을 안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밝혔다.

음모론을 이용한 정치공작

오늘날 정치 지형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美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통령 선거 당시 존스의 음모론을 수차례 언급해 음모론을 믿는 유권자의 표를 모았다.

해당 음모론에는 '기후 변화는 중국인이 미국 기업을 방해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 '선거 시스템 조작', '뉴욕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수천 명 무슬림-아메리칸들이 비밀리에 모여 축하파티를 했다' 등이 있다.

트럼프는 기득권 및 권력 상실을 우려하는 유권자 심리를 알고, 이를 이용해 표를 모으는 전략을 썼다. 이러한 심리 상태에 있는 이들은 보다 쉽게 망상증에 빠진다. 실제로 공화당 대선 후보가 이런 이야기를 언급할 때마다 대중의 망상과 불안은 심화됐고, 근거 없는 음모론은 영향력을 얻었다.

다트머스대학 브랜던 나이한 정치과학 교수는 "음모론은 저널리즘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반대파에 대한 적개심에 불을 지핀다"며 "음모론은 민주주의적 논쟁에서 사실적 기반을 침식하는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모든 음모론이 보수주의자의 작품은 아니다. 자유주의자 역시 음모론의 씨앗을 뿌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공화당이 확실하게 정권을 잡고 있는 현재는 이런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자유주의자가 퍼뜨린 음모론은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을 와해시키기 위해 러시아에서 심은 첩자', 'FCC는 스테판 콜버트를 노린다', '트럼프케어 통과 당시 공화당 의원들이 축배를 들었다' 등이다. 음모론은 또 다른 음모론을 낳고, 일단 한 번 뿌리내린 의심의 씨앗은 잡초보다 강한 생명력을 가진다. 이 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성장 속도를 늦추는 것뿐이다.

켈리-로마노 교수는 "거짓 음모론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들이 최소한 특정한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음모론이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도 말이 되는 것처럼 꾸며낸다는 것 역시 음모론이 번성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마주할 때 이를 파악하고 이해하고자 설명을 갈구한다. 음모론은 이러한 현실과 이해의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켈리-로마노 교수는 "음모론은 일종의 단순화 장치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제 이론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우리를 시기하고 공격하려는 악의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며 "광부가 일자리를 잃는 것도 경제 구조 변화나, 기후 변화 때문이 아니라 버락 오바마가 그들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음모론 확산은 인간 본성이다?

한편, 음모론의 확산이 착취와 이용 패턴을 탐지하려는 인간 본성 때문이라고 보는 과학자도 있다. 이들 역시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가장 합리적인 사람조차 음모론이나 기타 현실성 없는 이야기에 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알바니 뉴욕주립대 애나 뉴헤이저 심리학 박사는 "누가 음모론을 믿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관된 지표 중 하나는 어떤 종류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가"라며 "정치적 양극화는 이러한 망상증을 악화시킨다"고 했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믿음을 스스로의 정체성과 동일한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정신적 혼란의 가중을 이어진다. 이러한 정신 상태는 거짓 음모론을 받아들이기 쉬운 사고 패턴을 형성하는데, 자신의 믿음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일부 음모론자가 음모론이 사실이 아님을 확실히 증명하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음모론을 믿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편향적 사고는 결국 문화적 분열을 심화시킨다.

알렉스 존스는 샌디 훅 대학살이 강력한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려는 민주당의 사기라고 확신했다. 물론 이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없다. 알렉스 존스와 같이 실용적이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 실행 가능한 플랫폼을 가진 사람이 이런 종류의 언급을 하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확신을 준다. 또, 음모론에 빠지기 쉬운 정신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는 커다란 설득력을 가진다.

'오류적 진실 효과'라는 이론이 있다. 사람들은 익숙한 무언가를 진실로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것. 주류 담론에 음모론을 끼워 넣을 경우 진실과 음모론을 구분하는 판단력을 흐릴 수 있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도 그럴듯해 보이고, 뭔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나이한 교수는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 경찰 수사를 대통령에 반대하는 국가 세력의 음모론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사실에 입각한 건전한 논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심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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