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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대륙의 토착민, 어떻게 정착했나
등록일 : 2018-07-13 15:08 | 최종 승인 : 2018-07-13 15:08
심현영
▲전통 의상을 입은 소수민족 여성들 (출처=셔터스톡)

[리서치페이퍼=심현영 기자] 인간은 본능적으로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인도 땅에 터를 잡게 된 방법과 계기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

전통적인 역사는 아리아인의 침입이라고 불리는 사건을 이야기하지만, 최근 새로운 경향의 비판이 과학적 발견을 토대로 기존 이론에 도전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이 역사에 대한 전체론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정부가 고대 역사와 교과서를 다시 쓰려고 한다며 누군가의 분노를 유발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라멘드라 나스 난디는 최근 인도 미디어에서 크게 각광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최근에 리그베다 사미타라고 불리는 초기 남아시아 문학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역사적 장소로서의 리그베다'라는 책을 썼기 때문이다.

이 비판은 '리그베다 사미타가 기원전 2000년의 마지막 500년 시기에 출판됐다'라는 오랜 시간동안 구축된 사고에 도전한 것이었다. 이 시기는 하라판 문명(인더스문명)이 급속하게 쇠퇴해 베다 아리아인들의 인도 아대륙으로의 이주가 잦아들던 때다. 난디에 따르면, 하라판 고고학과 리그베다 구성은 특정한 오보 내용을 제외하고 논쟁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 인도인 사회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리아인 침입'이라는 원론에는 이러한 침략자들이 이란에서 내려온 고귀하고 공정한 계급이었다는 것. 이 내용에는 이 침입자들이 우수한 지식과 무기를 가지고 더 고도화된 문명을 세우고자 했고, 토착민을 남쪽으로 몰아붙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아리안'이라는 용어가 아베스타 경전에 이론적으로 묘사된 '인도-아리안'문화를 확립한 종족 집단을 표시하는 데 사용됐다. 용어의 어원학적 유래는 이란이라는 국가 이름에서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종과 민족을 구별하는 것이다. 당시 이것은 인종적인 용어가 아니라, 단지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의미를 함축한 것이었다.

아리안이라는 용어가 인종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아서 드 고비노가 19세기 아리안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관념적 인종에 이름 붙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는 “금발의 순수, 창백한 피부의 북유럽인이라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인종적 관념에 빠져 이들 백인이 전 세계에 이주해 살고 있다”며 “오늘날 살아남은 주요 문명을 구축했다”고 근거 없는 주장을 했다. 이는 나치즘의 영향이기도 했다. 특정 그룹의 우월성을 이야기하고, 유전적으로 우수하다는 나치즘은 백인 우월주의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실은 역사가 끊임없이 소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인 힌두인들이 만물에 새겨진 다르마 전통을 복원하려고 도입한 신조어로 고대 힌두문화를 고양시켰다. 좌파인 야당은 역사 자체에 대해 수정주의적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난디는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것에 큰 무리가 있었다. 더구나 오늘날 인도의 많은 사람들은 이른바 '사프로나이제이션'의 절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우파 민족주의자들의 고대 힌두문화 복원 운동과 연관이 있다.

새로운 연구가 이 논쟁을 전파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연구 결과를 숨죽이며 기다렸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에 하파란(Harappan)사이트에서 발견된 골격 유적에 대한 DNA 연구였으며, 연구의 결론은 중앙아시아의 흔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보수적인 아리아인 침입 이론이 난디와 다른 사람들이 처음에 예측한 것처럼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베다 진화가 이미 그곳에 있는 사람을 통해 이뤄져 왔음을 시사한다.

연구 수석 과학자인 니라이 라이·바산트 쉰데에 따르면, 완전한 원주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지식 생태계에 외부 영향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결과다.

쉰데는 “하라판 사이트의 인간 DNA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이 DNA는 외국인 요소가 적게 들어가 있긴 하지만, DNA는 분명히 지역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고학 자료를 통해 그 이후에 있었던 베다 시대가 외부와의 만남이 있던 '완전히 토착적인 시기'였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는 올해 초 설립된 위원회가 인도 사람들의 진짜 원류가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판명하면서 발표됐다. 마헤쉬 샤마 문화장관에 따르면, 위원회는 여러 분야에 걸쳐 인도 역사 및 문화와 관련된 사실을 확인하도록 지시한 약 17명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샤르마는 “이 위원회는 1년 임기 중 두 차례 만났으며 인도 문화에 관한 중요한 역사적 발견에 대한 다양한 제안을 했다”며 “보고서가 아직 대중에게 공개될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정보가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라판의 고고학 유적지 (출처=위키미디아 커먼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심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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