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아메리카의 꽃’ 마야 문명의 몰락

2018-10-29 10:27:39 심현영 기자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독자 발생한 세계 6대 문명에 꼽힌다(출처=위키미디어커먼스)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중심축이던 마야는 신기루처럼 돌연 자취를 감췄다. 찬란했던 문명이 덧없이 사라진 이유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래서 혹자는 마야를 ‘희미한 안개 속의 문명’이라고 부른다.

메소아메리카 문명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멕시코 중부에서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코스타리카 북부에서 일어난 문명이다. 테오티우아칸, 올메카, 마야, 아즈텍 문명 등이 모두 메소아메리카 문명에 속한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화, 그리스·로마 문명과 더불어 독자 발생한 세계 6대 문명이다. 또한 수메르, 중국과 함께 문자를 개발한 3대 문명에 꼽힌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기원전 7,000년에 세워졌다. 옥수수를 비롯한 농작물을 재배하고, 칠면조와 개 등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문명의 기반이 닦인 시기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은 자급자족률이 낮았기 때문에 교역이 중요했다. 지역별로 생태학적 차이가 뚜렷했다. 태평양 저지대 지역은 목화·암적색염료, 마야 문명이 터를 잡은 지역은 카카오·바닐라·재규어가죽, 멕시코 중부는 흑요석, 과테말라 고지대는 흑요석·황철석·비취, 나머지 해안지대는 어자원과 염료가 풍부했다.

마야 왕권의 상징 ‘재규어’

메소아메리카의 고대문명 중에서 으뜸은 단연 마야였다. 마야 문명은 상형문자를 개발하고, 숫자 0과 20진법을 사용했다. 웅장한 건축물을 비롯해 천체 관측 및 역법의 정교함은 현대 과학자들도 혀를 내두른다. 마야는 멕시코 남동부, 과테말라, 벨리즈, 온두라스 서부, 엘살바도르를 중심으로 번성했다. 도시가 건설된 시기는 기원전 750년부터 기원전 500년 사이로 추정된다. 이 당시 거대 사원을 비롯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여럿 세워졌다.

마야 문명의 마지막 왕으로 추정되는 야스 팍은 서기 775년 온두라스의 코판 계곡에 거대한 신전을 건설했다. 야스 팍 왕은 신전의 완성을 세상에 알리며, 자신과 선대왕들의 위업을 기리고자 재단석을 만들고 재규어를 제물로 바쳤다.

재규어는 메소아메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육식동물이었다. 마야의 왕들은 재규어를 왕권의 상징으로 삼았다. 재규어의 발이나 두개골을 장신구로 만들어 몸에 걸치고 다니거나, 제물로 바쳐 왕의 권위와 힘을 과시했다.

▲마야인들의 주식은 옥수수, 콩, 호박, 칠리페퍼 등 이다(출처=플리커)

마야 왕권의 몰락 ‘가뭄’

그러나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마야는 어느 날 갑자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재규어의 기운은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곤두박질쳤다. 마야가 외세의 침략을 받거나 내부에서 전쟁을 벌였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마야인들은 9세기에 연기처럼 돌연 증발했다. 마야 문명의 몰락이 고고학계의 최고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고대 마야 문명이 덧없이 사라진 이유는 자연재해, 다시 말해 가뭄과 관련이 깊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의 연구진은 고대 마야 왕국의 중심지로 추정되는 치칸카납 호수의 석고 성분과 산소 동위원소를 분석했다. 산소 동위원소와 석고는 과거 강우량을 추정하는 데 쓰이는 대표적인 성분이다. 조사 결과 이 지역에 가뭄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800~950년 사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당시 강우량은 평소보다 41~54% 떨어졌으며, 가장 심각한 시기에는 무려 7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가뭄이 극심했던 때와 마야 문명이 붕괴한 시기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9세기 초부터 시작된 가뭄으로 인해 농경 사회였던 마야 문명이 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이다. 연구진의 주장이 사라진 마야 문명의 수수께끼에 대한 온전한 답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여느 이론에 비해 설득력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마야 문명은 250년부터 대단히 복잡한 사회로 발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 식량의 중요성은 그만큼 커진다. 그런데 가뭄이 100년 넘게 이어졌다면 식량 생산은 차치하고 수로가 말라붙어 식량 교역도 어려웠을 것이다. 마야의 왕들은 백성들의 안녕을 보장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자연의 힘 앞에 제 아무리 유능한 왕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식량 위기로 인한 왕권 약화는 곧 사회 불안을 의미한다. 심각한 생활고와 불안한 사회를 견디다 못해 왕을 버리고 고국을 등진 마야인들의 이주 행렬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만약 캠브리지대학교 연구진의 주장대로 마야 문명이 기상이변 때문에 멸망했다면,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2012년 12월 23일’ 종말론처럼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이 기후 변화로 인한 혹한과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 마야 문명의 멸망이 어쩌면 우리 세대에 재연될 수 있다. 자연과 상생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심현영 기자]

[리서치페이퍼=심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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