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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복기억,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
2019-06-04 09:00:03
김성은
▲작가는 잠복기억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출처=셔터스톡)

[리서치페이퍼=김성은 기자]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철석같이 믿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살면서 축적된 기존 아이디어를 무의식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인 생각인 것처럼 느끼는 심리현상, 이른바 잠복기억(Cryptomnesia) 때문이다.

영국 콜린스 사전은 잠복기억을 “억압되거나 잊힌 기억이 새로운 경험이라는 착각 속에 재현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미국 서던메소디스트대학의 심리학자인 다나 머피(Dana Murphy) 교수와 알란 브라운(Alan Brown) 교수가 198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잠복기억’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잠복기억 실험

머피 교수와 브라운 교수는 학생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고, 모든 참가 학생에게 미리 정한 카테고리의 예시를 제시하도록 지시했다. 카테고리는 악기, 스포츠, 동물, 옷 종류 등으로 구성했다. 교수진은 학생들에게 독창적인 예시여야 하고, 한 번 언급한 예시는 다시 제시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 공간에 나란히 앉은 학생들은 교수진이 제공한 카테고리를 하나씩 들여다보았고, 총 다섯 가지 카테고리를 차례로 확인한 후에 자리를 옮겨 앉았다. 이후 교수진은 참가 학생 한명 한명에게 그룹 활동 중에 생각했던 예시와 다른 학생들에게는 말하지 않은 추가 예시 네 개를 적어 내도록 지시했다.

연구 결과 실험에 참여한 학생 중 40%가 다른 학생이 내놓은 예시를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해 말했다. 예시를 서면으로 써낸 경우에는 학생의 75%가 다른 참가자들이 이미 언급한 예시를 제시했고, 70%는 새롭지만 똑같은 예를 내놓았다. 말로 할 때보다 글로 쓸 때 표절을 저지르기 더 쉽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유추할 수 있었다.

잠복기억의 위험성

많은 유명인사들이 잠복기억 때문에 표절의혹에 휩싸인다.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이 발표한 ‘My Sweet Lord’는 소송 끝에 그룹 시폰스(The Chiffons)의 ‘He Is Fine’을 표절했다는 판결을 1976년에 받았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역시 표절 판정을 받은 바 있다.

표절 대상은 타인의 작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때로 자신의 작품을 표절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작가 조나 레러는 이전 작품에 썼던 내용을 신작에 그대로 옮겨놓아 자기표절(self-plagiarism) 논란을 빚었다.

인지 심리학자인 로날드 켈로그(Ronald T. Kellog)는 “작가는 의식적으로 기존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하기 때문에 잠복기억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한다. 작가들은 기존 작품을 인용하고 요약하면서 문체를 모방하고 관점을 비트는데, 이 과정에서 잠복한 기억이 자기도 모르게 표절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문호 윌리엄 포크너 역시 1958년 한 대학 연설에서 비슷한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그는 “작가의 경험은 눈으로 감상한 작품이나 그림, 귀로 접한 음악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기억의 착오와 변형은 무의식적 표절을 일으키는 요인이다(출처=셔터스톡)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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