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심에 사라지는 '코끼리 상아'

2018-12-26 11:23:07 심현영 기자
▲코끼리 상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전쟁 이후 태어난 암컷 코끼리들은 상아가 없이 태어난다(사진=ⓒGetty Images Bank)

아직도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내전에 사용될 무기, 병사들에게 공급할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코끼리를 죽이고 그 상아를 취해 판매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죽음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었을까? 이제는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모잠비크 고롱고사 국립 공원(Gorongosa National Park)의 터줏대감 코끼리들은 지역 내 코끼리 인구수를 90% 이상 말살시킨 지난 전쟁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단, 이들 코끼리는 모두 상아가 없다.

상아 없는 코끼리의 수

자연 상태에서 상아 없이 태어나는 암컷 아프리카 코끼리의 비율은 2~4%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92년 이 지역의 내전이 끝난 이후 태어난 암컷 코끼리들 가운데 무려 1/3 정도가 상아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고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코끼리 행동 전문가이자 탐험가인 조이스 풀에 따르면, 고롱고사 국립 공원에는 원래 약 4,000마리 코끼리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전 이후 코끼리 인구는 세 자리 수로 급감했다. 풀의 개인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25세 이상 200여 마리 암컷 코끼리 가운데 51%가 상아가 없는 상태며, 특히 전쟁 후에 태어난 암컷 코끼리 가운데 32% 가량이 상아가 없다고 한다.

풀은 “코끼리 수컷의 상아는 암컷의 상아보다 더 크고 무겁다”며 “그러나 코끼리 상아를 노린 사냥과 학살이 계속되면서 수컷 개체의 씨가 마르자 이제 밀렵꾼들은 암컷 코끼리까지 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상아 없는 암컷 코끼리의 수도 늘어만 갔다.

마더네이쳐 네트워크(Mother Nature Network)에 따르면, 남아프리카 지역의 상아 없는 암컷 코끼리 수가 단기간 내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0년대 초반 174마리 암컷 코끼리 가운데 무려 98%가 상아가 없었다. 한편 스코틀랜드 스털링대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서던 탄자니아 엘리펀트 프로그램 연구원인 조세핀 스미트(Josephine Smit)는 루아하 국립 공원(Ruaha National Park)에 거주하는 25세 이상 코끼리들 중 35%가 상아가 없는 상태이며, 25세 미만 어린 코끼리들 가운데도 13% 가량이 상아가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극심한 밀렵 행위로 인해 코끼리 상아 크기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이러한 경향은 특히 밀렵이 성행하는 케냐 남부 지역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밀렵이 심한 곳에서만 이처럼 상아 없는 코끼리 개체 수가 급증하는 현상을 봤을 때 코끼리들이 후손의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하여 상아가 없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가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인간들의 활동이 코끼리와 같은 동물들에게 영구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아가 없는 코끼리들은 다른 이빨이나 앞발을 사용해 나무껍질을 벗기는 데 성공했다(사진=ⓒ123RF)

상아의 상실이 코끼리에게 미치는 영향

상아란 기본적으로 코끼리의 엄니(어금니)가 성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이다. 코끼리들은 생활과 생존을 위해 이 엄니가 반드시 필요하다. 코끼리는 엄니(상아)를 이용해 땅을 파 물이나 필수 미네랄을 섭취하고, 나무껍질을 벗겨 섬유소를 섭취한다. 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른 수컷과 싸울 때도 엄니를 사용한다.

아이다호대학 행동 생태학자 라이언 롱과 일군의 유전학자, 생태학자들은 여섯 마리 다 자란 암컷 코끼리를 추적, 관찰했다(이들 중 셋은 상아가 있고, 셋은 상아가 없었다). 이 암컷 코끼리들의 행동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연구팀은 GPS 트래킹 디바이스 외에도 코끼리들의 대변과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 연구팀은 트래킹 디바이스의 배터리가 다 될 때까지 코끼리들을 모니터링해 이들의 유전자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살폈다.

이들의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스미트는 코끼리들의 행동 변화에 관한 몇 가지 사항을 알아냈다. 그는 “상아 없는 코끼리들이 나무껍질을 먹는 모습을 보면, 앞발을 사용해 나무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다른 치아를 사용할 때도 있었다”며 “상아 없는 코끼리들은 특히 껍질이 잘 벗겨지는 나무나 이미 살짝 벗겨져 있는 상태의 나무를 선호했다. 상아 없는 코끼리를 다른 코끼리들이 도와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코끼리가 사는 곳을 이동하거나, 그들이 이동 속도, 또는 이동 장소 등은 코끼리를 둘러싼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결국 야생 코끼리들의 분포 상태를 변화 시킨다. 즉 코끼리의 행동 변화가 전체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코끼리가 상아를 잃으면 다른 야생 동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코끼리가 상아로 하던 일들을 더이상 못하게 되기 때문. 예를 들어 파충류 중에는 코끼리가 상아를 사용해 껍질을 벗기거나 쓰러뜨려 놓은 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종이 있고, 코끼리가 상아로 파 놓은 연못에서 물을 마시는 동물도 있다.

오늘날 중국, 미국 등이 실시하고 있는 상아 무역 금지가 상아에 대한 수요를 다소 줄일 수는 있겠지만, 상아 없는 코끼리의 수가 다시 자연적인 수준을 회복하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은 우리 생각보다 짧지 않을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상아 없는 코끼리들도 여전히 생존에는 커다란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한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리서치페이퍼=심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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