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당한 피해자 비난하는 이유 '공정한 세상의 편견'
수정일 2020년 01월 02일 목요일
등록일 2020년 01월 02일 목요일
여전히 우리 사회는 성적 학대를 당한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풍토를 가진다(사진=123RF)
 

성폭력, 성희롱 사건이 발생할 경우 비난의 화살은 보통 피해자 여성에게 향한다. 피해자는 옷을 단정히 입지 않았다거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의 비난을 들으며 2차 피해를 겪는다. 사회심리학자였던 멜빈 러너는 이같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이유를 '공정한 세상의 편견'이라 칭하며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어막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알렉산드라 레이즈먼은 전 미 국가체조선수팀 의사였던 래리 나자르가 자신을 성폭력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변화를 창조해야 한다"며, 주변의 지지와 지원을 당부했다.

그러나 팀원이었던 가브리엘 더글라스는 오히려 레이즈먼의 주장을 비난했다. 도발적이고 성적인 생각을 갖도록 옷을 갖춰입는 것이 문제이며, 상대를 잘못된 유혹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여성이 먼저 단정하게 옷을 입고 품위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 발언은 성적 학대나 성희롱 등 원하지 않은 일을 당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듣는 흔한 비난이다. 실제로 사회에서는 여성이 가해자의 행동을 유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령 가해자가 성적 행동을 하지 않도록 옷을 입고 행동하며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언행하라는 것이다.

피해자 비난에는 여러 유형이 존재하지만, 때로는 매우 미묘하다. 용의자나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많은 질문이 가며, 일부 사람들은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조심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말한다. 피해자가 행동을 달리 했으면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비난은 피해자들이 범죄를 당한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도록 한다. 이는 점차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소외해 학대를 신고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든다.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태가 가해자를 보호하고 희생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이다.

희생자를 비난하는 주된 이유는 희생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을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사진=123RF)
 

공정한 세상의 편견

희생자를 비난하는 주된 이유는 희생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을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는 데 있다. 이를 공정한 '공정한 세상의 편견(Just-World Bias)'이라고 부른다. 인간의 두뇌는 예측 가능성을 갈망하기 때문에 공정한 세계의 편견이 발생한다고 믿는다. 이는 결국 불공정성의 희생자를 탓하는 경향을 만들게 된다. 즉 선은 보상받고 악은 처벌받는다는 의미다.

스와니대학의 심리학 교수 쉐리 햄비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싶은 강력한 충동이 있다. 잘못된 인식은 바로 이런 암묵적인 반대가 일어나는 곳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즉, 이대로라면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도 자신이 그럴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논조가 된다.

공정한 세상의 편견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 초 사회심리학자였던 멜빈 러너가 처음 확립했다. 그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이론을 테스트했는데, 희생자들은 고통받을 자격이 있고 수혜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고 싶은 갈망이라고 했다.  

초기 실험에서 그는 참가 여성들에게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받는 사람을 관찰하도록 요청했다. 이후 관찰자들이 피해자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물었는데, 한 그룹에서는 피해자를 반복적으로 경멸하는 반응도 나타났다. 반면 피해자를 비난하지는 않았지만 심각하게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고 주장한 그룹도 있었다.

러너는 이 실험 결과와 관련해, 무고한 사람들이 아무런 해결책 없이 다치는 것을 보고 있는 해당 상황이 관찰자들의 세계관을 침해했다고 표현했다. 해당 상황을 보면서 느끼는 자신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오히려 희생자가 운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후 실험에서도, 연구팀이 희생자를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수록, 관찰자들은 더 많이 평가절하했다.

매사추세츠대학의 심리학자 로니 자노프 벌만 박사는 인간은 긍정적인 추정적 세계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일은 좋은 사람에게 일어나고 나쁜 일은 나쁜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의를 가장해 그릇된 행위를 정당화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만들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행위나 범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다.

와이드너대학의 사회사업학 교수 바바라 길린은 역시, 많은 이들이 나쁜 소식에 직면할 때 방어 메커니즘으로써 피해자 비난에 의존한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은 제대로 통제되고 있다고 느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교수는 "많은 희생자와 주변인들과 함께 일해온 경험으로 볼 때, 사람들은 자신이 계속해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피해자들을 비난한다"며 이는 그들에게 결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자신은 계속해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한 예로, 이웃의 한 아이가 폭행을 당한 경우에도 이는 해당 부모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불러일으키며, 정작 자신의 자녀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비난의 위험성

이처럼 공정한 세상의 편견은 세상은 공정하며 희생자들은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당해도 된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와 사회뿐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자신에게는 끔찍한 일이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환상을 구축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비난은 또한 피해자들은 침묵시키는 반면 가해자들은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는 주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범죄가 용인될 수 있고 범죄자들이 행동을 바꾸지 않도록 부추긴다. 이제는 희생자를 비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