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Q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갯빛 깃발(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해마다 인권을 달이 되면, 거리와 쇼핑몰, 관광지와 여러 공공장소가 다양한 색의 장식으로 치장된다. 특히 올해 6월에는 어디를 가든 LGBTQ 권리 운동을 의미하는 무지갯빛 색상의 깃발과 상징들을 볼 수 있었다. 굳이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인터넷 세상 속에서도 무지갯빛 장식이 넘쳐났다. 유명인사들도 LGBTQ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온라인 게시물을 실었다. 인터넷을 포함해 전 세계가 LGBTQ 커뮤니티를 기리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LGBTQ 커뮤니티를 기리는 사람들 중에도 이 같은 운동이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인권의 달(pride month)'을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들의 커뮤니티인 LGBTQ에 속하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기념행사 정도로 알고 있다. LGBTQ 커뮤니티는 매년 6월마다 자부심과 다양성, 성적 취향을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의 달'은 그보다도 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1969년으로 거슬러간다.

'인권의 달'은 어떻게 시작됐는가?

'인권의 달'은 색종이와 깃발, 옷, 보디 페인트 등으로 장식을 하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게이 프라이드(gay pride)'의 진정한 의미는 이러한 기념행사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과거부터 투쟁해온 사람들을 기리는 것이다. 1969년 6월, 유명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다. 오늘날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LGBTQ 커뮤니티 세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간주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뉴욕의 게이 바였던 스톤월 인에서 발생한 이 유명한 항쟁은 LGBTQ 운동을 촉발했다. 그리고 경찰과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 격렬한 마찰이 연이어 벌어졌다.

1969년 6월, LGBTQ 프라이드 퍼레이드의 기원이 된 '스톤월 항쟁'이 일어났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19세기에 동성애 혹은 '남색 행위'는 하나의 범죄 행위였다. 따라서 게이 바는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성적 취향을 표현하는 하나의 소통 창구였다. 하지만 경찰들은 게이 바 같은 장소를 빈번하게 급습해 괴롭혔다. 심지어 당시 경찰들은 전형적인 '여성스러운 복장'을 입지 않은 여성들을 체포해 처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69년 6월 28일, 성희롱과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반대하는 운동이 촉발된 것이다. 그리고 '스톤월 항쟁'은 오늘날 LGBTQ 커뮤니티가 확대하는 데 기여한 역사적 초석이 됐다.

인권 기념 행사가 LGBTQ 커뮤니티에 어떻게 도움을 줄까?

1969년 스톤월 항쟁이 발생하고 50년 후인 오늘날, '인권의 달'은 많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와 여러 기념행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LGBTQ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소속감을 불어넣고 있다. 성적 취향을 지지하고 권리를 존중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기자 겸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가인 세레나 다니아리는 "학대와 공격을 받는 LGBTQ 회원들이 '인권의 달'을 맞아 보다 안전하고 수용적인 사회 분위기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달간의 '게이 프라이드' 기간 거리 곳곳에서 LGBTQ 커뮤니티를 지지한다는 슬로건을 보면서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권의 달은 색종이와 깃발, 옷, 보디 페인트 등으로 장식을 하고 퍼레이드를 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트랜스젠더 운동가 에바 레인도 오늘날의 프라이드 퍼레이드와 여러 페스티벌로 LGBTQ 커뮤니티가 수치심을 벗고 사회의 포용 분위기를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를 여러 그룹으로 나누는 고정관념이 지배했다. 성별과 인종, 종교와 의견, 정치 같은 무형의 주제가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 구성원의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연대를 상징하며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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