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RLY] 파인애플·셀러리,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다?
수정일 2020년 01월 09일 목요일
등록일 2020년 01월 09일 목요일
파인애플은 한때 영국에서 부와 위신의 상징이었다(사진=플리커)
 

일상 속 마트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파인애플과 셀러리가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이목을 끈다. 파인애플과 셀러리는 왜 귀한 대접을 받았을까?

 

카디프대학의 언어 및 의사소통 연구센터 연구원 오렌 알렉스 오헤이건은 파인애플과 셀러리가 영국 역사에서 한때 부와 위신의 상징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1668년 파인애플은 고급스러움과 망명의 명성을 얻었는데 찰스 2세가 대영제국의 홍보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관련 일화도 존재한다. 한 예로 프랑스 대사가 세인트 키츠 섬에 대한 논쟁 중재를 위해 영국을 방문했을 때 찰스 2세는 파인애플을 저녁 식탁 위 과일 피라미드 꼭대기에 놓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영국의 우세를 강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오헤이건은 또한 영국에서 일명 음식 셀카라는 개념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젊은 세대가 명품백이나 주얼리처럼 음식 사진을 SNS에 업로드해 자랑하는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이는 '왕실 정원사 존 로즈' 그림에도 잘 나타나는데 당시 네덜란드 풍경화가 헨드릭 당커르츠가 그린 이 그림에는 로즈가 찰스 2세 왕에게 파인애플을 선물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한편 최초의 파인애플은 조지아 시대(1717~1830년) 영국에서 재배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간 파인애플을 소유했던 사람들은 종종 과일을 장식품으로만 전시했으며, 썩기 전까지 파티에 사용하며 부를 과시했다.

 

당시 대부분의 세라믹 제조업체는 파인애플을 중앙 구멍에 넣을 수 있도록 전용 파인애플 스탠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다른 과일은 파인애플의 가장자리에 놓도록 돼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부와 위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파인애플을 들고 다니면서 자랑하는 트렌드로 이어졌다.

 

실제로 파인애플은 인기가 너무 많아 과일을 운반하던 하녀조차도 도둑의 습격을 받을 정도였다. 즉 파인애플을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할 정도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807년에 이르러서는 파인애플 도난사건과 관련된 각종 법정 사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파인애플 절도로 유죄판결을 받으면 7년간의 중노동을 선고받는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인기도 잠시 증기선을 통한 수입으로 파인애플 수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위신을 잃어버렸다. 돈이 많고 망명 높은 사람들뿐 아니라 서민도 파인애플을 살 수 있게 됐다. 상류층들은 다른 계층과 구별할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을 찾게 됐는데 바로 셀러리였다.

 

셀러리가 영국에서 처음 재배된 것은 1800년대다. 이스트 앵글리아 습지에서 재배됐는데 셀러리 재배를 위해서는 참호를 먼저 지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줄기의 백색도를 유지하기 위해 참호를 정기적으로 파내야 했다. 노동력이 많이 들고 재배 비용도 고가인 관계로 셀러리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애 비싸고 희귀한 채소였다.

 

부자들이 한때 부의 상징이었던 파인애플을 함부로 먹기 주저했던 것처럼 셀러리 역시 똑같은 대우를 받았다. 트렌드에 따라 셀러리 꽃병도 제조됐다. 식탁에서 셀러리를 더욱 돋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제조된 이른바 셀러리 전용 병이다. 셀러리의 정물화 기법도 도입될 정도였다.

 

20세기 영국의 호텔과 식당들은 너도나도 메뉴에 셀러리를 선보였다. 이후 영국의 재배 기술이 향상되면서 셀러리 역시 더이상 사치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노동집약적인 절차와 재배 비용은 셀러리를 영국 빅토리아 시대 동안 비싸고 희귀한 채소로 만들었다(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소득불평등은 오늘날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심각한 사회문제다. 금융서비스회사 크레디트 스위스가 발표한 2018년 세계 부호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1% 미만이 세계 부의 47%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성인의 0.8%가 세계 부의 44.8%를 차지하고 있으며 8.7%가 39.3%를 차지, 26.6%는 13.9%를 차지, 63.9%는 1.9%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아워월드인데이터 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순 개인자산의 상위 1% 점유율 수치는 1900년 0.71%에서 ▲1920년에는 0.57% ▲1940년에는 0.51% ▲1960년 0.035% ▲1980년 0.19% ▲2000년 0.18% ▲2005년 0.19% ▲2009년 0.21% ▲2012년 0.21% 등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