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관심 빙자한 아동 학대 ‘차일드 그루밍’, 세심한 관찰 필요
수정일 2020년 03월 11일 수요일
등록일 2020년 03월 11일 수요일

아이가 갑자기 신형 스마트폰을 가져온다면 학대의 신호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가해자가 미성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활용하는 도구인 ‘차일드 그루밍(child grooming)’일 수 있다. 

최근, 호주 멜번스쿨에서 부적절한 차일드 그루밍 사례가 적발됐다. 전직 운동선수였던 코치가 학생을 대상으로 그루밍을 한 것이다. 가해자는 범죄자가 됐지만, 이미 피해자인 미성년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그루밍’이란 개나 말 같은 동물의 털을 빗질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머리를 빗겨주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단어 자체는 순수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새, 아동 성추행자가 아동과 관계를 구축하고 신뢰를 얻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더해졌다. 기본적으로 그루밍은 애정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동은 이 같은 행동에 취약하다. 왕따나 우울증, 고립 같은 부정적인 사회적 환경에 처한 아동에게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차일드 그루밍은 신체적 또는 디지털 접촉을 통해 가능하다. 두 방법 모두 가해자가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부모는 자녀가 가족을 포함한 타인으로부터 이상한 관심이나 애정을 받지 않는지 세심히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반적인 그루밍과 달리, 차일드 그루밍은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거나 선물을 사준다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등 방식이 다양하다. 아동은 친절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고, 가해자, 즉 그루머(groomer)가 만들어낸 가상의 케이지에 갇히게 된다. 이때 아이가 거부하는 행동을 보이면 가해자는 협박을 할 수도 있다.

아동이 그루머에게 복종하면 성적 학대의 피해자가 된다. 가학적 그루머는 약점을 이용해 아이를 상품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그루밍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 세인트케빈칼리지는 전직 운동 코치의 그루밍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 사건은 현직·전직 스태프들과 부모, 학생들의 잇따른 증언으로 문제가 드러났다.

증언에 따르면, 두 명의 남교사가 여러 남학생을 대상으로 잠재적 그루밍과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이 밝혀졌다. 리더십 부재와 정책 미비, 직원 훈련 부족 등이 학교 차일드 그루밍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된다. 

따돌림이나 차별, 우울증이나 고립, 인종주의 같은 경험은 성장하는 아동의 정신 및 감정, 사회적 측면을 손상시킨다. 아동은 인정받고 싶고 이해 받길 원하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루머들은 취약한 아동의 신뢰를 얻기 위해 관심과 보상을 아낌없이 제공한다.

학교 그 자체 환경이 촉발하기도 한다. 교사가 권한을 남용한다면 특수한 약점이 있는 학생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 학교 운동선수들은 점수를 채점하는 가해자들의 완벽한 먹잇감이다. 운동선수는 담당 교사 혹은 코치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당한 거래로 이어질 수 있다.

아동에 대한 간접적인 그루밍도 있다. 표적에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아동이 속한 사교 반경에 들어가 신뢰를 먼저 쌓는다. 이 방법은 아동에게 직접적인 관심을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악의적인 의도를 감출 수 있다. 일단 사교 반경 안에 들어가면 표적 아동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부모나 교사도 위협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그루밍을 당하는 아동은 자신이 그루밍 대상이라는 표현을 한다. 아이가 타인을 피하고 사회활동을 원하지 않는다면 부모는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또 학교 활동이나 학교 직원을 피하거나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신원을 감춘다. 새로운 물건이 자주 눈에 띄는데, 물건이 어디서 생겼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그루밍은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하다. 아동에게서 미세한 변화가 발생한다면 안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2018년 미국에서 아동 보호 서비스 조사를 받은 아동은 약 353만4,000명이었다. 이는 2014년에 비해 8.4% 증가한 수치다. 수집된 데이터에 따르면, 피해자의 84.5%는 한 가지 유형의 학대를 받고 있었다. 60.8%는 방치 당하고 있었으며 10.7%는 신체적 학대, 7%는 성적 학대를 받았다. 15.5%는 두 가지 이상의 학대를 받고 있었다.

부모와 보호자는 아동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부적절한 점이 있었는지 밝혀내야 한다. 단 중요한 점은 대화할 때 공포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영섭 기자 r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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