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감염병으로 손꼽힌다. 스탠포드대학 연구진은 과거 흑사병과 현재 코로나19의 유사점을 밝혔다.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흑사병 창궐 당시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현재, 똑같은 문제가 있다. 바로 잘못된 정보, 신뢰할 수 없는 질병 관련 보고, 그리고 정치적 긴장이다. 연구진은 현재 감염병의 사망률이 이전보다 낮은 이유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흑사병은 중세 시대에 발생한 유행성 전염병으로, ‘페스트’라고도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 중세시대 흑사병이 유명하지만, 542~546년경에도 흑사병이 발생했다. 흑사병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유럽 대륙으로, 인구의 30~60%가 사망했다.

흑사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한다. 과거에는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았고 과학과 의학 수준 또한 지금처럼 높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질병으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다. 흑사병 유행 당시에는 질병에 대한 공포, 사회적인 혼란, 경제적 문제,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 다툼이 유럽 곳곳에서 발생했다.

흑사병에 처음 노출된 국가는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독일, 북아프리카, 현재의 벨기에, 룩셈부르크 및 네덜란드 등이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까지 바이러스가 닿았지만, 유럽 대륙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질병 확산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스탠포드대학의 이탈리아 역사학자 파울라 핀들렌은 "팬데믹의 역사는 코로나19에 대한 현대인의 두려움을 원근법으로 보여준다. 이전 사람들은 오늘날 우리보다 훨씬 적은 자원만 갖고도 질병으로부터 회복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핀들렌은 흑사병과 코로나19 사이에 세 가지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문제는 잘못된 정보다. 현대사회에서는 소셜 미디어로 잘못된 정보의 영향력이 더 클 수 있지만, 흑사병 창궐 당시에도 잘못된 정보가 존재했다. 많은 도시가 경제적인 타격을 받으면서 흑사병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는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다.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가 장기적으로 집계되면서, 흑사병으로 인한 실제 사망자 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많은 전문가가 연구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의 흑사병 사망자 숫자를 최대한 정확하게 추려내려고 노력했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코로나 19 진단키트의 부족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지막 문제는 정치적 긴장이다. 흑사병 창궐 이후, 정부기관 사이에서는 정치적 긴장이 폭발했다. 흑사병이라는 적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왜 죽었는지, 왜 치료에 실패했는지 등을 알아내기 위해 과학과 의학 분야에 종사했다. 그 결과 과학과 의학 분야가 발전했고, 곧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다른 유기체, 항생제 등이 등장했다.

흑사병의 영향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전반적인 사망률은 인구의 1/8에서 2/3 정도에 이른다. 유럽에서는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흑사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흑사병으로 약 1,000개 마을에서 인구가 감소하거나 완전히 사라졌다. 1400년의 잉글랜드 인구는 100년 전보다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2,500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하면서 1348년 이전 수준의 인구수로 돌아갔다.

과거 감염병 시대와 비교했을 때, 현대 여러 가지 요인 덕분에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은 훨씬 낮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예전보다 더 나은 영양 섭취, 깨끗한 물 사용, 적절한 위생 관리, 의료 기술 등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요인이 없다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은 스페인독감 사망자보다 많았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스페인독감으로 전 세계 1억 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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