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미국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 조지 플루이드가 숨지면서 미국 전역에서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경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013년 시작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이 다시 부활했다. BLM 공식 홈페이지에는 “백인지상주의를 근절하고 주와 자경단이 흑인 공동체에 가하는 모든 폭력을 중재할 수 있는 지역의 힘을 기르자”라는 내용이 게시돼 있다. BLM 국제적인 인권 운동은 2013년 17세였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등학생 트레이본 마틴에게 총을 쏜 조지 짐머만에게 무죄가 선고된 후 시작됐다.

미국 디킨대학 클레어 코볼드 교수에 따르면, 미국 전역 도시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오랫동안 깊이 뿌리 내린 불만에서 기인한 것이다. 코볼드 교수는 인종주의적 치안 유지 활동과 고정관념, 법적 차별 등이 미국 역사에 오래전부터 뿌리 내려왔으며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권 및 노동법인 1964년 시민적 권리에 관한 법률(Civil Rights Act)이 제정된 이후 차별을 금지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완전한 평등을 이루지는 못했다. 여전히 경찰관의 손에서 인종적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시위대들은 150여 개 도시의 거리를 점거하고 있으며 백인 경찰관과 흑인 시민 사이에서 격렬한 충돌로 이어지고 있다.

무장한 저항세력을 비난하는 백인 중도파도 있다. 코볼드 교수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을 언급했다. 목사이자 인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폭동은 허공에서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코볼드 교수는 “이번 사건처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소요 사태 촉발 원인은 거의 언제나 경찰의 행동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919년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청소년이 미시간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황에 근처에 있던 백인이 돌을 던져도 경찰관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1865년 미국에서 노예 제도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백인들은 흑인 노동력을 착취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가난하게 만든 것이다. 그 방법에는 노동 계약에 대한 제정법과 인종주의 고정관념도 포함돼 있었다. 이 같은 관습과 법률이 폭력의 근간을 만든 것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50년까지 4,000명 이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폭력적인 사적 제재로 살해를 당했다. 게다가, 이 같은 관행이 암암리에 허용되고 있었다.

1960년대는 경찰의 잔인함뿐만 아니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으로 인해 시위대가 만들어졌다.  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재산 소유에 대한 사법 시스템에서 배제됐다. 그 결과, 흑인 가계는 백인 가계와 동일한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지 못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빈곤층으로 밀려났고 정원이 딸린 집을 살 수 없었으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6명이 미국의 인종 간 관계가 매우 나쁘다고 말했다. 백인 중 49%, 흑인 중 73%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미국 성인 중 단 15%만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인은 흑인과 히스패닉계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응답자 중 59%는 미국에서는 백인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답했다.

2017년 미국의 인권 점수는 0.24점이었다. 인권 점수란 정부가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점수 범위는 -3.8 ~ 5.4점대로 점수가 높을수록 정부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네스코는 인종주의를 “우리 시대의 사회 암”이라고 일컬었다. 즉, 사회를 서서히 좀먹어가고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인종주의와 맞설 수 있는 적극적인 방관자가 될 수 있다. 즉, 허용할 수 없는 행동과 충돌을 본다면 적절하고 안전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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