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와 유라시아 초원이 이들의 고향

말 사육은 인류 역사상 동물의 혈통을 기록하는 데 있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과정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말의 유전적 기원을 해독하는 일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거의 모든 현대의 말 품종은 고대 중동 지역에서 사육되다가 약 700년 전 유럽에 들어온 두 개의 품종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말들이 어떻게 거래되고, 품종개량을 겪었으며 도난당해 왔는지를 이해하면 동서 문명이 뒤섞이고 충돌하면서 인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도 함께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약 6000년 전 오늘날의 우크라이나와 서부 카자흐스탄 인근의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말을 길들였다.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말은 속도와 체력, 힘, 지능, 훈련의 용이성 같은 바람직한 특성을 갖도록 교배됐다.

학자들은 몇 백년 전부터 말의 가계도를 추적해 왔으나 1700년대에 와서야 어떤 종류의 말들이 존재하고 어떻게 유전자가 이어져 왔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상세한 저서가 만들어졌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수의과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바바라 월너 박사는 과거 문헌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말 품종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DNA 시퀀싱 기술을 이용했다.

연구팀은 21개의 현대 말 품종을 대표하는 52마리 수컷 말의 Y염색체를 따라 DNA조각에서 최초로 수십개의 변이를 발견했다.

종마의 Y염색체에서 작은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미래의 모든 수컷 자손에게 유전되므로, 유전학자들은 숫말이 어느 부계에서 왔는지를 추적할 수 있게 된다.

미국 켄터키 대학의 글럭 에퀸 연구센터의 유전학자 어니스트 베일리 박사는 이와 같은 연구 내용에 대해 상당히 큰 도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Y염색체 내에서 기능 유전자를 찾아내는 것은 극히 까다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기능 유전자는 비기능적 DNA의 길고 반복적인 서열로 구성돼 있는데다, 말은 특히 Y 염색체에 따른 유전적 다양성이 극도로 낮기 때문에 개체 간에 의미 있는 변이를 찾기가 훨씬 어렵다.

베일리 박사는 "Y염색체의 복잡한 구조는 게놈 시퀀싱을 시행하는 이들에게 악몽과도 같이 어려운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연구팀이 게놈 기술을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탁월한 기술과 신중함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그는 평가했다.

연구팀은 말의 혈통에서 돌연변이가 어느 시기에 나타났는지, 빈도가 얼마나 되는지 또한 정확히 밝혀냈다. 월너 박사는 "친자 확인 검사가 시행되기 수년 전에 우리는 가계도 데이터가 그렇게 정확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놀랍고도 기뻤다"고 말한다.

돌연변이 발생률이 통상 각 세대에서 평균 7년 주기라고 가정 할 때, 연구팀은 약 700년 전에 살았던 21마리의 현대 품종 중 18 종까지의 가장 일반적인 공통 조상을 추정했다.

북유럽의 세 가지 말 품종인 셰틀랜드 조랑말, 노르웨이 피요르드 말, 아이슬란드 말은 각기 다른 품종과 유전적으로 더 관계가 가까웠다.

연구팀은 이어 57종의 현대 품종을 대표하는 363마리의 숫말(알려진 현대 품종의 약 5분의 1)로 분석을 확대해 이들 종마가 어떤 품종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자료를 구성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말 품종은 거의 대부분 아라비아 반도의 아라비안 말과 유라시아 대초원에 서식했으나 현재는 멸종된 투르크만 말 두 종류 계통에서 나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 계통은 현대 말의 유전학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졌으나 그 영향이 이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파악된 것은 처음이다.

이 말들 중 일부는 상인들과 함께 유럽에 도착했을 것이고, 다른 말들은 통치자들 사이의 선물로 바쳐졌으며, 전쟁 중 전리품으로 포획된 말들도 있을 것이라고 월너 박사는 말한다.

수백 년에 걸쳐 유럽의 말 사육자들은 이 아라비아와 투르크만 계통의 종마가 더 좋은 형질의 자손을 생산하고 품종이 개량될 때까지 두 계통의 교배를 반복적으로 강화해 왔다는 것도 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부분이다.

오늘날 이들의 후손은 서러브레드, 아메리칸 쿼터, 사우스 저먼, 아팔루사 등 거의 모든 현대식 말 품종의 부계 혈통을 형성하고 있다.

아라비아와 투르크만 계통은 오랫동안 아이코닉 잉글리시 서러브레드 경주마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리피잔과 프랑셰-몽타뉴와 같은 종들은 같은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다고 베일리 박사는 설명했다.

그는 연구팀의 돌연변이율과 발생 주기에 대한 계산이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흥미로운 정보를 준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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