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에게 익명으로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대개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지 않고 돈을 기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왜 그런 사람을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것일까?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모쉬 호프먼과 마틴 노왁, 오스트리아과학기술연구소의 크리스천 힐브는 새로운 게임이론 모형을 만들어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했다. 이들의 게임이론 모형은 사회적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일부러 그 신호를 감추고자 하지만 오히려 추가적인 정보가 제공되며,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신호 송신자는 이득을 얻게 된다고 설명한다. 신호를 감추려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신호 그 자체가 된다는 것.

그 사회적 신호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신호를 보내는 사람이 자기를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지만, 반대로 미묘한 메시지를 놓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혹은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신호를 발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예를 들어 확고한 취향을 가졌거나 기민한 사람은 브랜드 로고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지 않아도 어떤 명품인지 아는데, 그것과 비슷하다.).

연구진은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게임이론 모형 '신호-묻기 게임(signal-burying game)' 모형을 만들었다. 이 게임이론 모형에서는 3가지 유형의 신호 송신자(신호를 강하게/중간/약하게 보내는 사람)와 2가지 유형의 신호 수신자(신호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비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신호 송신자와 수신자는 서로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모른다. 그저 신호 송신자는 유·무형의 비용을 들여 신호를 보낸다. 그 신호는 분명하게 드러날 수도 있고 반대로 묻힐 수도 있다. 만약 신호가 묻힌다면, 신호 수신자가 이를 눈치 챌 확률이 그만큼 낮다고 할 수 있다. 혹은 해당 신호가 수신자에게 전혀 수용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신호 송신자는 이를 무의식적으로 고려해 어떤 신호를 보낼지 결정한다. 그러면 신호 수신자는 송신자와의 경제적 상호작용에 참여할지 말지 결정한다. 그런 점에서 이 게임은 리스크 요소를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호 송신자와 수신자로서는 자신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신호-묻기 게임 모형에 의하면 이런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고차원의 신호 송신자는 신호를 감추는 쪽을 선택하고, 중간 차원의 송신자는 신호를 어느 정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쪽을 선택하고, 저차원의 송신자는 신호를 전혀 보내지 않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혹은 신호를 보내지도 받지도 않는 쪽으로 시작했다가 무작위로 전략을 선택하거나 다른 사람의 전략을 따라하는 쪽으로 선회할 수도 있다. 가령 침묵을 표현하는 방식을 선택하거나, 이득이 많이 따르는 다른 사람의 전략을 배우는 쪽으로 할 수도 있다.

신호-묻기 게임 모형은 익명으로 기부하는 심리 외 다른 상황들도 설명해 준다. 졸업한 대학에 대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하게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심리, 예술가가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심리, 자신의 이해관계를 숨기는 심리 등이 해당된다.

이 연구는 29일(우리시간) 저널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게재됐다.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김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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