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픽사베이

특정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삽입하는 데 활용되는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의 윤리적 문제와 안전성을 지적하는 연구가 많지만, 불치병과 난치병 등의 치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돼 현재까지는 낙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더 많다.

지난 5월 말에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메디컬센터에서 크리스퍼가 표적 유전자 외에도 돌연변이를 발생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이달 초 <바이오아카이브>에는 이 연구를 반박하는 하버드대와 MIT의 공동 연구가 실렸다. 크리스퍼가 정말로 실보다는 득이 많은 차세대 기술일까?

미국 미시간 대학교 생태학/진화생물학 교수인 알렉세이 콘드라쇼프와 그 연구진이 <사이언스>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크리스퍼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을 듯 보인다. 이 연구진은 유성생식과 자연선택의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기존 통설을 실제로 입증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하면서, 크리스퍼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콘드라쇼프 연구진은 어느 종의 돌연변이율 예측 수치와 실제 돌연변이율 사이에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를, 유성생식을 통해 돌연변이가 발현되지 않아 실제 돌연변이율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성생식을 통한 자연선택을 주장하는 기존 통설을 강조한 셈이다.

유성생식을 하면 예컨대 우성의 정상 유전자와 열성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결합됐을 때 정상 유전자가 발현되는데, 이를 넓게 보면 자연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선택이 해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나지 못하도록 막고, 이로 인해 이론상 돌연변이율보다 실제 돌연변이율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해당 연구진은 이 같은 기존 통설을 다시 한 번 실제로 입증하고자 약 2천 명의 사람과 초파리 약 300마리의 데이터를 수집했다. 인간과 야생 초파리의 이론상 돌연변이율과 실제 돌연변이율을 비교한 결과, 실제 돌연변이율은 이론상 돌연변이율보다 훨씬 낮았다.

이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샤밀 서냐예프는 "매우 해로운 유전적 돌연변이를 막아 주는 자연선택이 인간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자연선택은 인간 게놈의 서로 다른 부분이 호혜적으로 상호작용함으써 이뤄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돌연변이는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다수일 때는 서로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연구원 마샤알 소하일은 "보다 효과적인 자연선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이 우리 인간과 같은 종에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해로운) 돌연변이율이 지나치게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성은 두 유기체의 유전자가 섞일 수 있게 해 주는 메커니즘이다. 유성생식을 통해 유리한 유전자가 발현됨으로써 해로운 돌연변이가 없어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연구진은 상조적 상위(synergistic epistasis)라고 하는 이 현상으로 볼 때, 유성생식이 무성생식보다 진화상 더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고 결론을 지었다.

▲크리스퍼의 원리. 출처 : 위키피디아

유전자 편집에 대항하는 상조적 상위

만일 상조적 상위가 추후 연구를 통해 좀 더 실질적으로 입증된다면 돌연변이를 대하는 태도부터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까지는 유전적 돌연변이는 자명한 것으로 마이크로 수준에서 제거돼야 할 대상으로 간주됐다. 실제로 유전자 편집 등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상조적 상위 모형이 확실하게 인정받을 경우, 크리스퍼와 같은 유전자 편집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이론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연구는 유전자가 유성생식을 통해 서로 동시에 작용한다는 점을 실제로 입증했다. 즉, 한 번의 유전자 개조라고 하더라도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첫 번째 도미노가 되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후속 연구가 진행돼 더 많은 증거가 나온다면, '크리스퍼는 예상할 수 없는 유전적 변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좀 더 힘이 실릴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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