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나르시시즘의 맨 얼굴, 제노포비아 전 세계적으로 확산
수정일 2018년 07월 16일 월요일
등록일 2018년 07월 16일 월요일
▲군중들의 손 위를 걷는 나르시시스트의 실루엣(출처=셔터스톡)

자신이 속한 집단이 옳고 우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행동을 '집단 나르시시즘'이라 부른다. 집단 나르시시즘에 빠진 그룹은 자신들이 다른 어떤 집단보다 우월하고 특별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집단 나르시시즘의 산물이 바로 '제노포비아(Xenophobia)'다. 제노포비아는 낯선 것 혹은 이방인이라는 의미의 '제노(Xeno)'와 공포란 뜻의 '포비아(Phobia)'가 합성된 말로 '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을 나타낸다.

반난민 정서 팽배한 유럽

난민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과 행동은 제노포비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아프리카에서 유입되는 대규모 난민이 최근 유럽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아프리카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험난한 바다와 산맥을 넘어 유럽으로 건너간다. 국가 안팎의 전쟁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서, 자식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최근 유럽 국가들은 난민들에 대한 문을 닫고 있다. 이탈리아는 난민선의 입항을 거부해 수많은 난민이 바다에 표류하게 만들어 국제적 공분을 샀다. 한 발 더 나아가 오스트리아는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대규모 난민 봉쇄 훈련을 벌였고, 헝가리는 난민을 돕는 개인과 단체에 징역 1년형까지 선고할 수 있는 반난민법을 통과시켰다.

난민들의 보호자를 자처해왔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난민 정책에서 한 발 물러섰다. 유럽 외부에 난민센터를 설립해 망명자를 선별하고, 국경을 강화해 난민 유입을 통제하기로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합의했다. 메르켈 총리의 난민 포용 정책은 독일 안팎의 거센 반난민 여론에 밀려 정치적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반난민 정서가 팽배한 유럽 국가들은 난민이 국가 경제를 뒤흔들고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입을 모은다.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점에서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 마찰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점점 더 조직화하고 집단화하는 유럽의 '난민 혐오'는 단순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인종차별과 제노포비아가 결합하는 미국

미국은 정도가 더 심각하다. 제노포비아가 인종차별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 인종차별과 제노포비아는 기저에 나르시시즘이 깔려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는 하지만 의미는 사뭇 다르다. 인종차별은 일종의 압제로 누군가의 삶을 여러 방식으로 침해한다. 반면 제노포비아는 낯선 존재를 사회에서 배척한다.

미국 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기념비적 국제조약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을 체결했다. TPP는 무역 장벽 철폐를 목표로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일본,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베트남, 싱가포르 등 총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무역 자유화 협정'이다. TPP 협정에는 회원국 간 규제 완화 외에 환경 및 인권, 지적재산권 등의 주요 사안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미국인은 TPP를 아프리카계 미국인 버락 오바마의 큰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를 향한 백인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의 혐오 감정을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미국의 백인 노동자들은 일치단결해 도널드 트럼프를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영국의 이민자 중 77%가 인종차별이나 제노포비아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인종차별적인 행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꾸준히 인종차별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이민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도중에 아프리카 국가들을 '거지소굴 같은 나라(shithole countries)'라고 칭하는가 하면, 2017년 여름 버지니아에서 폭력 시위를 벌인 백인우월주의자들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넘어간 일도 있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밀입국 부모-자녀 격리 정책이 빈축을 샀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미 밀입국자의 자녀를 부모와 격리하는 무관용 이민 정책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들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했지만,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격리 정책을 철회했다.

백인우월주의는 미국의 맨 얼굴을 여실히 보여준다. '백인 학살(White genocide)'이라는 근거 없는 두려움에 빠진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우리의 존속과 백인 아이들의 미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워 미국 내 여러 주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백인 학살은 백인이 비백인 이민자와의 결혼으로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믿음을 근거로 만든 단어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데 배경이 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집단 나르시시즘, 선별적 기억과 수정주의 역사관이 토대

제노포비아의 기저에 집단 나르시시즘이 있다면, 집단 나르시시즘의 기저에는 선별적 기억과 수정주의 역사관이 있다. 헨리 로에디저 워싱턴 대학 심리학자는 미국인 2,8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거주하는 주(州)가 미국의 역사에 기여한 정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따르면, 델라웨어주의 경우 거주민의 33%가 델러웨어가 미국의 역사에 기여했다고 답했다. 조지아주는 28%,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는 21%를 기록했다. 매사추세츠주와 버지니아주는 각각 35%, 41%로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로에디저는 "명확한 정답이 없다는 점에서 올바른 조사는 아니지만,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거의 모든 주의 주민들이 상당히 미화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로에디저는 선별적 기억과 수정주의적 역사관이 집단 나르시시즘의 뼈대를 이룬다고 본다.

테네시주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테네시는 '발룬티어 스테이트(Volunteer State)'라고 불린다. 남북전쟁 및 멕시코전쟁에서 수많은 테네시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테네시주 주민들에게는 나름 자부심의 원천이다. 하지만 남북전쟁의 경우 테네시주는 노예제 폐지가 아닌 노예제 존속을 위해 싸웠다. 북부군이 아닌 남부군의 편에서 싸운 것이다. 테네시 주민들의 이러한 선별적이고 과장된 기억이 바로 로에디저 연구진의 핵심 연구 분야다.

한편 로에디저 연구진은 곧바로 2차 연구를 시행했다. 조사 대상을 주가 아닌 국가로 확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사는 국가가 전 세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조사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195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기여도를 터무니없이 과장한 것. 일례로 영국은 응답자의 54.6%가 영국이 세계 역사에 기여했다고 답했다. 또한 영국 내 이민자 중에서 인종차별이나 제노포비아를 경험한 사람은 77%를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르시시즘과 제노포비아의 연관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색깔이 다른 달걀을 향한 표정을 통해 인종차별을 풍자한 사진(출처=셔터스톡)

[researchpaper 리서치페이퍼=김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