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픽사베이

'뚜껑' 기능이 있어 분자를 자유자재로 잡아두거나 내보낼 수 있는 분자 용기가 개발됐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의하면 일본 카나자와 대학교가 최근 일명 호스트-게스트 분자 원리를 활용해 뚜껑 기능이 있는 고리형 호스트 분자(macrocyclic host molecules)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분자 용기(molecular container)는 호스트 분자가 게스트 분자(이온)를 빈 공간 안에 가두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크라운 에테르를 모방한 것으로, 호스트 분자가 '화학적' 분자 용기 역할을 한다. 크라운 에테르는 1962년 찰스 페더슨이 최초로 합성한 고리형 호스트 분자다. 찰스 페더슨은 크라운 에테르 발명으로 1987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 분자 용기의 대략적인 구조를 살펴보자면, 큰 뼈대는 4개의 메틸아민(CH3NH2)이 잡는다. 메틸아민 두 개씩 각각 분자의 위아래 배치된다. 뚜껑 자리에는 수소결합에 의해 삼플루오르화메테인(CF3SO3-)이 각각 위아래 하나씩 오도록 설계됐다. 연구에 의하면 이 분자 용기는 다양한 메탈 이온(Na+, K+, Rb+, Cs+, Ca2+, La3+)을 붙잡아 둘 수 있다.

▲ (a)는 크라운 에테르 구조(18-크라운-6). (c)가 이번에 개발된 분자 용기의 화학식. (i)에 금속 이온(게스트 분자)가 위치하며, (ii)는 뚜껑 역할을 한다. 출처 : 카나자와 대학교

'뚜껑'에 따라 달라지는 분자 포획/방출 속도

일반적으로, 크라운 에테르와 같은 고리형 호스트 분자의 이온 포획/방출 과정은 1밀리초 안에 끝나는 등 매우 빠르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분자 용기의 경우 이온을 매우 천천히 포획한다. 예컨대 La3+의 경우 포획 시 120시간이 걸린다. 뚜껑 역할을 하는 삼플루오르화메테인이 La3+가 들어올 공간을 막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방출 시간은 대체로 뚜껑 역할을 하는 분자의 종류에 따라 달라졌다. 아세테이트 이온(CH3CO2-)이 뚜껑 역할을 했을 때 La3+는 5분 안에 방출이 완료됐다. 삼플루오르화메테인이 뚜껑으로 쓰였을 때에 비하면 최소 100배 이상 빠른 것이다.

한편 삼플루오르화메테인은 뼈대 격인 CH3NH2와 수소결합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뚜껑을 다른 분자로 교체하기가 용이하다.

▲ 다양한 금속 이온을 담을 수 있는 분자 용기.

원하는 이온을 원하는 순간에

기존 분자 용기와 달리 이 분자 용기는 종류가 다른 이온이 섞여 있어도 뚜껑을 교체함으로써 표적 이온만 따로 포획/방출할 수 있다. 원하는 이온을 원하는 순간에 포획하거나 방출할 수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를 검증하기 위해 포획이 빠른 K+와 느린 La3+로 실험을 실시했다. 삼플루오르화메테인을 뚜껑으로 썼을 때는 두 이온이 섞여 있어도 K+만 포획됐다. La3+가 포함된 경우가 K+보다 더 안정적임(더 느림)이 분석에서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La3+가 포획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2주 후 La3+가 감지됐다. 이 실험 결과는 삼플루오르화메테인이 거의 완벽하게 이온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반면 아세테이트로 실험했을 때는 이온 출입 속도가 삼플루오르화메테인을 사용한 때보다 75배 더 빨랐다. 즉, 아세테이트 뚜껑을 달은 후 120시간 뒤 이온 교환이 즉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종류별로 다른 뚜껑들이 준안정상태 하에서 이온을 뽑아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준안정상태를 유지한다 함은 곧 뚜껑을 교체함으로써 원하는 이온을 원하는 순간에 포획/방출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호스트 분자에 이온을 포획/방출시키는 연구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이온 포획/방출을 유도하는 힘으로 외부 자극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호스트 분자의 구조를 유지시켜주는 결합력에 외부 자극을 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번에 개발된 분자 용기는 전체 구조를 흩뜨리지 않으면서 화학적 뚜껑을 이용해 분자의 출입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이번 연구를 통해 이온 포획/방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분자 용기가 개발됨에 따라 시간에 맞춰 투약하거나 원하는 위치에 투약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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